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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6. 16世 〉1. <요재공>청효당공휘종신사적(淸孝堂公諱宗信事蹟)
1. 문헌 목록 〉16. 16世 〉3. <요재공>선전관공휘언준묘표(宣傳官公諱彦準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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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재공>양덕거사휘정래묘표(陽德居士諱鼎來墓表)
陽德居士諱鼎來墓表 三神山方丈一支가逶迤西行數十里虛에峰起禪雲而撑北하고流洄仁江而開南이라仙尨은吠於雲衢하고鶴唳를時聞松闕이라卜此名區하야以定先壟하니千年佳城之驗左가以松楸常綠而無疑라就其先塋下負艮之原하야階上下兆而崇封은中古通德郞玉川趙公諱鼎來字曰重徵과同其配恭人咸平牟氏의衣履之藏이라葬後多年에尙闕石儀之表러니時與人得하야靑山舊塋에樹得新珉而記之하니所以樹風百世不沫이라非公擇地種德之果耶아是宜子孫所不敢恩而聿修者也라玉川氏之肇祖는在麗朝中葉하야官至大將軍門下侍中諱曰璋으로爲起世之祖하니三傳諱元吉은官至門下侍中이라勳封玉川府院君諡忠獻이나不拜而自松京退隱于淳昌하고六傳諱潤屋은官至大司諫承旨러니當端廟乙亥之變棄官而隱山自靖이요又三傳諱德隣은以純孝至行으로著聞하니自淳昌移胥于高敞之始라世傳忠孝而不差는獨傳於口碑者多라將仕郞曰諱淑은祖이니聞行誼하고曰諱相說은考이며妣는端人慶州金氏이니士人孝溫의女라有孝友行而稱이라公生于顯宗壬子而卒於壬戌十二月二十三日하니壽得七十一이요娶察訪咸平牟世茂女하니生은辛亥요卒은壬戌六月二十三日이니亦得壽七十二라擧三子而裕後하니曰顯東字宗伯號仁湖는伯이요曰垕東字美伯號德湖는仲이요曰錫東字和伯號石湖一云敬菴은季라三昆季相處湛樂于三湖亭하야不救聞達而學不倦究義理而相磨하니世稱三處士之云이今猶碑而傳이라孫에寅復寅采寅綱崔鎭壤은長房出이요寅建寅謙金宗鐸曺景寬은次房出이며寅奎寅暹寅喆은季房出이라曾玄이繁衍하야不能盡錄이라抱狀而謁文者公之九世孫修勳邦勳이니辭不得而識焉이라今不敢溢美誣先하야以犯君子之恥는非直淺意요乃謁文者言이라亦可貴也라 嗚呼라禪雲山峨峨하고仁江水涓涓하니公之遺風이應千秋萬世라 大韓光復後初癸酉春三月 日 原任成均館典學 延日 鄭知海 識 양덕거사휘정래묘표(陽德居士諱鼎來墓表)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의 한가닥이 서쪽으로 내달아 수십리를 위이(逶迤)하여 이곳에 이르른 뒤 북으로는 선운봉을 일으키고 골짜기 사이로 인천강이 굽이돌아 가관을 이루니 신선과 노닐던 개는 구름 사이에서 짖어대고 소나무 사이로는 학의 눈물 보는 듯 아름답기 그지 없네. 이곳에 터를 잡아 선영을 모시게 되니 千古의 아름다움이 송추(松楸)의 푸르름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노라. 공의 묘소는 선영의 바로 아래 간좌의 언덕에 있으니 통덕랑 옥천조공 휘 정래(鼎來) 자(字)는 중징(重徵)이요 배(配)는 공인(恭人) 함평모씨(咸平牟氏)의 영혼이 잠든 곳이라. 이곳에 잠든지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단 하나의 표석도 마련하지 못하였더니 후손들이 뜻을 모아 청산영역에 새로이 표석을 세우고 이를 기록하니 백세를 지나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는 다 공이 닦은 덕망의 결실이요 또 자손들의 조상을 잊지 못하는 정성의 지극함이라. 옥천조씨의 시조는 고려중엽에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신 휘 장(璋)을 비롯하여 四세조 휘 원길(元吉)은 관이 문하시중에 이른뒤 옥천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시호를 충헌공(忠獻公)이라 내리셨었다. 이씨조선을 섬기지 않으려고 송경을 떠나 순창에 은둔하였으며, 十세조 휘 윤옥(潤屋)은 벼슬이 대사간에서 승지에 이르더니 단종의 손위함을 못마땅하게 여겨 모든 관직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산중으로 은둔하였고, 十三세조 휘 덕린(德隣)은 지극한 효도로 세상에 알려지더니 임진왜란을 피해 순창으로부터 고창으로 옮겨와 새로이 터전을 닦으신 분이다. 대대로 충효를 다하며 내려오는 것은 오직 구전(口傳)이나 비문등에 의해 전해옴을 많이 보아왔다. 장사랑 휘 숙(淑)은 공의 조부이시고 휘 상열(相説)은 공의 아버님이시며, 단인(端人) 경주김씨는 어머님으로써 사인(士人) 효온(孝溫)의 따님이시다. 공은 현종 임자(壬子)년에 태어나 영조 임술(壬戌)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七十一이라. 찰방을 지낸 함평 모세무(牟世茂)의 따님과 혼인하였는데, 단인(端人)께서는 현종 임자(壬子)년에 나시어 정조 임술(壬戌)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七十二세라. 슬하에 삼형제를 두었으니 큰아드님은 휘 현동(顯東)이오 자는 종백(宗伯)이며 호는 인호(仁湖)이고, 둘째아드님은 휘 후동(垕東)이오 자는 미백(美伯)이며 호는 덕호(德湖)이고, 셋째아드님은 휘 석동(錫東)이오 자는 화백(和伯)이며 호는 석호(石湖)인데 혹은 경암(敬菴)이라 하기도 한다. 삼형제가 합심하여 삼호정(三湖亭)을 짖고 부근의 사인(士人)들을 초청하여 시문을 겨루며 진리를 탐구하니 세상 사람들이 삼처사(三處士)라 이르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공의 손자 인복, 인채, 인강과 손녀 최진양은 큰아드님의 소생이고, 인건, 인겸과 손녀김종탁, 조경관은 둘째아들의 소생이며, 인규, 인섬, 인철은 셋째아들의 소생이다. 이 밖에 종손 현손등의 후손은 그 수가 많아 번거로와 다 기록할 수 없게 되었다. 자료를 가지고 찾아온 공의 九세손 수훈과 방훈의 청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기록에 임하지만 감히 선조들의 역사를 임의대로 써 넣는일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며 오직 사실대로만 기록하는 것이 더욱 귀중한 것이다. 오호라! 선운산이 높이 솟고 인천강이 졸졸 흐르니 공의 유풍이 천추만대토록 영원하리라. 대한광복후초계유년봄삼월 일 원임 성균관전학 연일 정지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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